아이들이 놀리자 손자는 며칠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방에 틀어박혀 종이 박스들로 무엇인가 만들기 시작했다. 종이로 된 로봇이었다. 손자의 키와 비슷했는데, 손자 말에 의하면 입을 수 있게 만든 거라고 했다. 가슴에는 병뚜껑과 할아버지 돋보기의 렌즈가 붙어 있었다. "이게 뭐야?" 내가 물었더니 병뚜껑은 용기를 주는 버튼이라고 했다. "렌즈는?" 내가 다시 묻자 그것도 모르냐고 손자가 말했다. "이건 레이저야." 손자는 그걸 입고 학교에 갔다. 담임 선생님이 내게 전화를 걸었고 나는 음료수 한 병 사지 않고 빈손으로 찾아갔다. 나는 선생님에게 말했다. 망토에서 용기가 나오는 거라고. 망토를 못 입으니 무서워서 종이 로봇이 되는 거라고. 선생님이 마른 세수를 하고 말했다. "정욱이 할머니, 전 잘 모르겠어요. 그러다 영원히 극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요." 그 말에 선생님을 미워했던 마음이 조금 녹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