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한 젊은 작가에게는 고집스럽게도 낯을 가리는 변태스런 습성 때문에 조예은 작가님은 익히 들었지만, 작품은 처음이다. 특이한 흡입력이었다.
1. 불가항력으로 잊지 못하는 곳.
정해에게 미아도와 영산이 있듯, 나에겐 20대 때 하루가 멀다 하고 거닐던 포항 영일대가 있다. 슬픈 기억도 있었는데, 우연히 애인과 다시 방문했을 때 꾸욱꾸욱 밟아 파도에 던졌다. 그때 이후부터는 긍정적인 느낌만 남고 아련한 감은 사라져서 그리워하질 않았다. 정해도 파도에 (정말로) 모든 걸 흘려보냈으니 이제 후련히 거취를 옮길 수 있으리라.
2. 비관적이지만은 않은, 그리워하는 마음.
부모님은 엄하지 않으셨고 자유롭게 우리 자매를 키웠다. 오히려 조부모님, 특히 외할아버지께서 첫 아이인 나를 장자처럼 이끄셨다. 너무 자유만 따를 때는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셨고,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는지 모르겠다며 세월의 무상을 논하기도 하셨다. 나이에 비해 정정하셔서 할머니와 함께 해외여행도 잘 다니셨다. 내가 유치원생일 때부터 나중엔 미국 땅에 묻힐 거라며 서운한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왜인지 갑자기 한국에 정착하셨다. 그리고 곧 정말 갑작스러운 병에 급하게 돌아가셨다. 중환자실로 모시는 길에는 할머니와 나뿐이었다. 별일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름시름 앓는 할아버지께 무탈할 거라고 장담했던 그 순간이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란 걸 알았다면 그렇게 너스레를 떨지 않았을 텐데. 아마 모든 가족들도 예측하지 못했을 거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던 구체적인 슬픔은 나만 안다.
3. 업(業)과 연(緣)이 쌓여 만든, 시절인연.
한참 음악 축제 문화에 빠져있던 기간이 있었다. 2018년도, 정확히 코로나 직전. 중학생 때 빠져 살던 책과 음악과 영화를 대학에 진학하며, 취직을 준비하며, 회사 생활을 하며 정말 신기하게도 까맣게 잊었다. 그런데 그 시절 그 사람들을 통해 음악을 다시 듣게 되었고 책을 다시 향유하게 됐다. 그 시절로 인해 직업도 공학도에서 출판인으로 바뀌었다. 진탕 취해 감상 속에, 철학 속에, 에고 속에 파묻힐 수 있게 경험을 넓혀준 그 많은 스쳐 지나간 인연들에게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