벵하민 라바투트의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를 재밌게 읽었다. 과학사를 기반으로 한 픽션이지만 픽션과 논픽션이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뒤섞여 읽는 이로 하여금 혼미할 정도로 빨려 들게 하는 그의 필력에 감탄할 정도였다. 물론 그 책에 포함된 모든 작품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의 신작 <매니악>도 망설임 없이 읽게 되었는데 사실 어떤 내용인지, 누가 나오는지도 몰랐다. 단지 그의 작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역시나 그의 스타일답게 긴박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몰입도가 높았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그랬다.
책의 구성은 전작과 유사했다. 1부 파울 또는 비이성의 발견, 2부 존 또는 이성의 광기 어린 꿈, 3부 세돌 또는 인공지능의 망상 등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전개되는데 제목에 나온 대로 주로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인 파울 에렌페스트,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존 폰 노이만 (본명은 야노시, 또는 연치라고 불리며, 미국으로 건너가 이름을 존으로 바꾸었는데 이 책에서는 주로 조니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세돌이다. 그리고 한 명 더 넣자면 딥마인드의 창립자인 데미스 허사비스를 들 수 있겠다.
각각의 이야기는 연관성이 없지만 그나마 물리학과 전산, 그리고 인공지능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을까 싶다. 다소 어려운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물론 배경지식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고 해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겠다.
1부에 등장하는 파울 에렌페스트는 이론물리학자로서 양자역학의 발전에 기여했음에도 당시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여러 물리학자들처럼 혼란스러워했고, 끝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에게 양자역학은 이성적이지 않았으며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정신이 이상해졌고, 막내아들과 함께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단순히 양자역학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평생 멜랑콜리와 우울증을 알았다고 하니까.
라바투트는 그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풀어냈다.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작품의 앞머리에서 갑작스레 등장한 결말, 그리고 그 결말에 이르는 과정은 다시 맞물린다.
여기에서는 양자역학 자체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전작에서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굳이 파울 에른페스트의 이야기를 가지고 왔을까. 라바투트는 과학사에서 천재들의 광기가 어떻게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는지 그 사례를 찾으려 했던 것 같고, 마침 폰 노이만과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그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고 보면 라바투트는 주로 20세기 초중반의 과학의 격변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이 책의 중심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2부는 전체 분량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 분량 때문인지 2부는 다시 시 세 개의 장으로 나누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특이하게도 폰 노이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대신 그의 가족, 친구, 동료들이 그에 대해 회고를 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그들의 시각에서 폰 노이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것인데 물론 이는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말을 했거나 글을 쓴 것은 아니고 작가가 상상력을 더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고 그들과 폰 노이만의 관계를 기반으로 최대한 근사하게 재창조한 것이리라.
존 폰 노이만. 그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너무나 유명하고 전설과 같은 인물이다. 천재의 대명사처럼 불리기도 하고. 이 책에서도 어렸을 때부터 그의 비범함을 증언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의 그런 모습들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들도 같이 다루고 있는데 특히 일상생활에서의 어수룩함이나 오히려 평범한 것에서 모자란 듯한 모습도 보였다.
게다가 늘 성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좌절을 겪기도 했으며, 그의 원대했던 꿈을 다 이루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연구윤리를 저버리고 목표지향적인 듯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의 도덕성이 지적되기도 한다. 특히 게임이론은 그가 과연 인간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인가라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그런데 이 부분은 명확하지가 않고 독자가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사실 그 부분은 실제로도 규명하기가 쉽지는 않은 부분이기에.
그리고 오펜하이머의 삶을 다룬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나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 <오펜하이머>와 연관되는 부분도 있다. 사실 이 작품들에서는 폰 노이만이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지만, 라바투트는 폰 노이만의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의 이야기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왔다. 특히 리처드 파인만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러나 두 작품을 비교할 필요는 없으며 사실 두 작품이 별개의 것이다. 다만 오펜하이머의 이야기가 이 책의 재미를 조금 더 증대시켜 줄 수 있으리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이 '매니악'인 이유는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광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중간에 폰 노이만이 개발한 컴퓨터의 이름이 MANIAC이어서 중의적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부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을 다루고 있는데 이세돌의 바둑인생을 간략하게 돌아보았고 그에 대해서 얘기했다. 한국인들은 잘 알고 있는 이세돌이지만 외국인들은 아마 알파고와의 대국 이전에는 잘 몰랐던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혹은 이름은 모르고,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이긴 사람 정도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이세돌 못지않게 천재가 있었으니 딥마인드를 세운 데미스 허사비스다. 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는데 이 책에 나온 내용을 통해 그 또한 엄청난 천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사실 두 인간 천재의 대결로 볼 수도 있을 듯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3부에 더 흥미를 가질 수도 있을 듯하지만, 외국인들의 경우엔 3부에 얼마큼 흥미를 가질지는 모르겠다.
다섯 번의 대국을 마치 현장 중계하듯 긴장감 있게 풀어냈는데 당시 대국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고 결과도 이미 알고 있기에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대국도 2016년에 이루어졌으니 벌써 8년 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동안 AI는 더 무섭게 발전했고, 이제는 바둑에서 인간은 AI를 이길 수 없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세돌의 이름이 더 기억에 남게 되는 것이리라. 그 뒤에 마스터와 대국을 두었던 커제는 세 판을 내리 지며 더 이상의 인간대 AI의 대결은 무의미해졌다. 만약 이세돌이 다섯 판을 모두 졌다면 그의 이름 역시 잊혔으리라.
이 책은 '자가학습 알고리즘으로 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마무리된다. 그 답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라바투트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AI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얘기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고, 그 속에는 천재들의 통찰과 노력, 그리고 광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미래가 어떠할지를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다소 어둡거나 끔찍하기까지 하다. 개인의 천재성, 광기가 한 인간을 넘어서 세계와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으니까.
저자는 그러한 주제들에 대해서 최대한 주관적인 생각을 배제하려고 한 것 같지만, 결국에는 그의 주관성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가 창조해 낸 스토리들은 엄격한 사실이 아니며, 설사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의 의미나 가치가 상실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픽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