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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7월 15일 자정 무렵, 줄리언 비글로는 고등연구소에 도착해 매니악이 있는 지하로 내려간 다음, 벽에 몸을 딱 붙인 채 컴퓨터 뒷면으로 접근해 중앙 제어 스위치를 껐다. 거대한 탯줄처럼 생긴 검정 케이블뭉치는 건물의 중앙 전력망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 선들을 잡아당겨 플러그를 뽑자 한순간에 히터 필라멘트가 식었고, 안내 섬광처럼 일렁이던 음극이 사라졌고, 그때까지도 희미한 정전하 흔적 속에서 매니악의 메모리를 보존해왔던 진공관이 잠잠해졌다. 이후 회로는 영영 되살아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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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나는 유령을 보았다. 얼마 전까지도 생생히 살아 있었으며 격론을 불러일으켰던 기계의 해골이 이름 없는 무덤에 말없이 누워 있었다. 컴퓨터, 고물덩어리, 최초이자 시초였던, 일명 조니악 혹은 매니악, 격식을 차린 이름으로는 '고등연구소 숫자 계산기계'라고도 불리던 그것 은 이제 가둬졌다. 여왕으로 군림했던 건물 뒷방에 묻혔다기보다 숨겨진 채로, 어쩌면 잠에서 깨어나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날 날만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