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의 단편소설이 실려있고, 모두 중년 남성의 ‘나’가 화자여서 가정을 이루기도 했고, 홀로 중년이 되어 과거를 회상하기도해서 읽다보면 한 인물이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다. 각 단편소설은 강렬하게 기억 남는 사건이나 반전 없이 표지의 그림처럼 강물에 떨어진 낙엽들이 물길따라 떠내려가듯 잔잔하게 흘러가는 삶을 이야기한다.
현재의 안온한 삶이 유지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불안감, 예술가와 대학가의 직업을 갖고 있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지의 고뇌하는 모습은 내가 중년의 나이라 그런지 공감되었다. 한편으로 저물어가는 젊음과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내가 놓쳤던 무언가와 잊고 있었던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했다.
<오스틴>
아이들이 태어나며 바뀐 일상과 나이가 든 내 모습을 거울로 보며 느낀 감정. 내 인생이 아니라고 남일이라 여겼던 이야기가 내 삶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불안감. 가족이 생기고 안정감이 있음에도 눈물이 많아진다.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를 잃을 것만 같은 상실감을, 이것이 나이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듯한 소설.
<넝쿨식물>
삼십대. 동네 카페 바리스타로 일하는 나와 추상화를 그리는 마야는 판화가로 꽤 유명한 예순즈음의 라이어널 집에 세를 들어 산다. 라이어널은 20대 젊은 여자를 모델로 누드화를 그리는 작업을 하는데 그의 작품이 성적이라며 비난하던 마야와 나는 라이어널을 부러워하는 마음도 있다. 삼십대는 최고의 성과라 말하는 라이어널의 말에 지금 삶의 행복을 느끼고 있으며 사랑하는 일을 알아가는 중이라 답을 한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마야와 헤어지게 됨을 알아채게 되고,(직업도 재산도 꿈도 명확하지 않은 자신에 비해 마야는 꿈이 있으니 헤어지는 것이겠지만) 우연히 라이어널의 작업실에서 마야와 닮은 누드화를 보게된다.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하라고 손 내밀던 라이어널은 마야에게도 손을 내밀었을까. 그래서 마야는 라이어널을 통해 성공하고 싶었던 것일까.
<첼로>
아내 내털리는 유능한 첼로 연주자이지만 손의 떨림으로 연주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낙담한다.
<라인벡>
리베카와 데이비드. 그 두 연인과 오랜 친구처럼 지냈지만 둘 사이의 흔들림과 권태 사이에 한번씩 자신이 이용당하는 듯한 기분. 함께 있으면 좋지만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셋 모두 안다. 각자의 길을 가야하는 기로에서 왜 선택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지. 아니 그런 마음을 가졌었는지도 이제는 흐릿해진 기억.
<숨을 쉬어>
아이는 풍족한 장난감과 환경을 어른과 다른 호기심으로 소유욕으로 좋아한다. 그런 아이에게 모든 걸 갖추었는데 어릴 때 물에 빠진 기억에서 극복하지 못하고 기침을 하는 것으로 아이도 부모도 모두 예민하다. 사고가 일어난 후. 일상으로의 빠른 복귀 정상처럼 보이고자 한 행동이었지만 정작 마음으로 고통은 극복하지 않았다. 경제력과 방법이 잘못되었나. 결국 극복 못한 모습. 아이 부모 모두.
<벌>
알렉시스와 나. 그리고 딸 리아. 별거 중인 부부의 헤어지는 감정들. 곧 떨어져 추락할 듯한 불안함과 더 이상 단란하고 행복한 시간이 오지 않는 다는 것을 아이도 나도 모두가 안다. 그 사이에 더 불안하게 벌들이 집에 벌집을 짓고. 이미 마음 떠난 아내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지만. 인정하면 희망조차 사라질 것 같다. 구질구질하게도 리아와 벌을 핑계로 끊어질 것 같은 인연을 붙들고 있다.
<포솔레>
육아에 지쳐 유일하게 힐링하는 공간. 시간이 지나며 사라지고 변해가는 그런 공간은 내 머릿속에만 존재할 것이다. 그리움으로.
<히메나>
무기력한 삶을 사는 나와 직장의 안정감을 위해 노력하지만 젊은 나이의 경쟁상대에게 질 때마다 힘들어라는 칼리. 그런 둘 사이에 젊은 히메나와의 대화로 서로가 알지만 말하지 않던 충고들을 간접적으로 듣게 된다.
긴 시간이 흐르면 번듯한 집도 있을 줄 알았는데, 제자리에 정체되어 있고 아이도 없고 안정적인 직업도 없이 사는 지금을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던 것. 매일을 쉬지 않았고 미래를 꿈꾸었고 노력했지만 지금 현실의 답답함이 보였던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