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자신의 고통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 부당성을 예의 주시하는 이기적 앞띠이랑 겉질이 어떻게 제 주변 딱한 이들의 고통을 느끼도록 만드는 이타적 앞띠이랑 겉질이 되는 걸까? 나는 이 장의 핵심 주제, 즉 감정이입적 상태가 알고 보면 얼마나 자기 자신에 관한 일인가 하는 점과 이 문제가 관련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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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앞띠이랑 겉질 외에 다른 뇌 영역들도 관여한다. 앞에서 뇌의 감정이입 회로가 성숙할수록 앞띠이랑 겉질뿐 아니라 섬겉질도 더 많이 활성화한다고 말했다. 성인의 뇌에서는 섬겉질이 (그보다 정도는 덜하지만 편도체도) 앞띠이랑 겉질 못지않게 감정이입 경험에 적극 개입한다. 세 영역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편도체가 이마엽 겉질로 보내는 정보 중 상당량이 앞띠이랑 겉질을 거쳐서 전달된다. 감정이입을 일으키는 여러 상황들, 특히 물리적 통증은 앞띠이랑 겉질과 섬겉질을 함께 활성화한다. 게다가 그 활성화 정도는 피험자의 기본적 감정이입 성향, 혹은 피험자가 그 상황에서 느꼈다고 보고한 주관적 감정이입 정도에 비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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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겉질과 편도체는 아이가 감정이입을 맥락과 인과에 따라 이해하는 능력을 발달시키는 과정—저 사람이 왜 아픈지, 그게 누구의 잘못인지를 감안하는 것이다—에서 차츰 관여하게 된다고 말했다. 고통이 부당함에서 비롯한 경우에는 당연히 두 영역이 관여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고통이 막을 수 있는 것이었고 다른 누군가가 그로부터 이득을 보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자연히 혐오, 의분, 분노를 느낀다. 심지어 우리는 고통이 부당함에서 비롯했는지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에도 귀인을 찾으려 든다. 앞띠이랑 겉질과 섬겉질과 편도체의 뒤얽힘이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