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아파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극심한 슬픔에 짓눌려 있다. 다른 사람은 이 사실을 안다. 그래서 어쩌면 정말로 놀라운 상태를 경험할지도 모른다. 결코 기껍다고는 말할 수 없는 그 상태에 최대한 적절한 이름을 붙인다면 아마 ‘감정이입’일 것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상태는 아기들이나 다른 종들도 느끼는 상태의 연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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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가장 원시적인 방식으로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는 현상부터 살펴보자. 단 여기서 ‘원시적’이라는 단어는 딱히 더 나은 표현을 찾지 못해서 쓴 것뿐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현상으로는 감각운동 전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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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서 전염도 있다. 이것은 아기 하나가 울면 다른 아기도 따라 우는 것, 혹은 누군가가 군중의 열기에 휩싸여서 시위에 대뜸 합류하고 나서는 것처럼 어떤 강력한 정서가 자동적으로 전달되는 현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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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도 그렇다. 요즘 이 단어가 일상에서 어떤 뜻으로 쓰이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나도 당신 처지에 공감하긴 하지만……”), 이런 맥락에서 ‘나’는 상대의 괴로움을 덜어줄 힘이 자신에게 있지만 그 힘을 쓰지는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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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정서적 행위로서의 공명과 인지적 행위로서의 공명을 구별하여 일컫는 경우가 있다. 이 맥락에서 ‘공감’은 우리가 비록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진 못해도 안타깝게 느끼긴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감정이입’은 우리가 그 고통의 원인을 살펴보고, 그의 관점을 취해보고, 그의 입장이 되어보는 인지적 측면까지 수행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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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타인의 괴로움에 공명하는 마음에 자기 자신의 감정이 얼마나 깊이 관여하는가를 기준으로 나눠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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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보다 더 생생한 대리적 공감도 있으니, 이것은 마치 상대의 고통이 자신에게 벌어지는 듯 느끼는 마음이다. 그런가 하면 인지적 거리를 둔 채 상대의 관점을 취해보는 공감도 있는데, 이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가 어떨지를 상상해보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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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개념이 ‘연민’이다. 이때 연민은 우리가 타인의 괴로움에 공명하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실제로 돕게 되는 것을 뜻한다.1 한 가지 짚어둘 점은, 이런 용어들이 가리키는 상태가 보통 그 사람의 내적 동기로부터 생겨나는 상태라는 것이다. 우리가 남에게 억지로 감정이입을 일으킬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