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적인 기쁨을 이토록 잘 구사하는 화가로서 존 리치는 거의 유일하다고 해도 좋다. 리치의 작품이나 솜씨에 대해 뭐라고 하는 사람은 있을지 모르지만 순수한 재미라는 차원에서, 그리고 완전히 우스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어 리치는―크룩섄크를 제외하고는―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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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몇 년 전만 해도 테니얼은 가장 우아하면서도 기발한 머리글자를 그리는 화가였다. 테니얼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 중 대다수는 정확하게 그려졌으나 이따금 딱딱하게 느껴지는 만화보다는 『펀치 포켓북Punch’s Pocket-Book』이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수록된 진지하면서도 기괴한 그림들을 더 좋아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미친 티파티」 장면보다 유쾌한 것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삼월 토끼의 엉망진창으로 심란해진 표정을 보라. 모자 장수는 열의로 넘치면서도 어딘가 모순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 조금만 있으면 이 둘은 주머니쥐를 찻주전자에 넣으려 할 것이다. 책장을 몇 장 넘기면 파란 애벌레가 버섯 머리 위에 앉아 물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나온다. 정확한 정보에 따르면 애벌레의 키는 딱 3인치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얼마나 위엄 있는 모습이란 말인가! 그 나긋나긋한 몸가짐은 어찌나 동양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