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말까지만 해도 목판화라는 예술 분야는 거의 활용되지 않았다. 호러스 월폴이 1770년경 쓴 글에서 “영국에서는 완성도 있는 목판화 작품이 만들어진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단언했을 정도다. 1766년, 월폴은 파피용의 『판화 개론Traité de la Gravure』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회를 빌려 파피용이 단 한 번이라도 “목판화로 회귀하도록 세상을 설득한”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고작 몇 년 뒤 뷰익이 등장하면서 목판화는 거의 부활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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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목판화가 어떻게 제작되는지 충분히, 또 자세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분명한 건 예전에 뒤러의 그림을 복제하던 목판화가들이 사용하는 방식과 뉴캐슬 출신 예술가가 사용하는 방식 사이에는 뚜렷하고 명확한 차이가 두 가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중 하나는 목판을 준비하는 방식과 사용하는 도구의 차이다. 예전의 목판화가들은 나뭇결을 따라서 세로로 켠 목판, 즉 널빤지 위에 칼과 끌로 그림을 새겨 넣었다. 뷰익은 회양목이나 배나무의 나뭇결을 가로질러 잘라내어 만든 목판에 조각칼로 그림을 새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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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차이는 뷰익이 처음 시도했다고 알려진 방법에 있는데, 이는 제대로 설명하기가 한층 더 어렵다. 이 방법의 핵심은 기술 용어로 ‘흰 선’이라 불리는 요소의 도입이다. 과거의 목판화가들은 그림 속 여백 부분을 깨끗하게 파냈으며 그 결과 그림의 선들은 마치 활자처럼 양각으로 남아서 찍혀 나왔다. 뷰익은 인쇄 잉크로 찍어낼 때 검은 잉크 자국이 균일하게 나타나도록 회양목처럼 부드럽고 고른 표면을 지닌 나무를 이용하는 한편, 목판을 가로지르는 흰 선을 넓거나 좁은 간격으로 새겨 넣으면서 완전히 검은색에서 희미한 색조까지 아우르는 음영의 농담을 표현했다. 이런 방법을 도입하자 목판화에서도 색조의 깊이를 한층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