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는 스토서드보다도 더 큰 재능을 지녔지만 그로써 수익을 거두는 행복은 거의 누리지 못했던 한 예술가도 있었다. 바로 윌리엄 블레이크다. 블레이크의 재능은 스토서드의 재능처럼 시장성이 있는 상품은 아니었다. 스토서드는 그 간편한 우아함으로 당대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블레이크는 예쁜 것을 바라는 단순한 대중성에 부합하는 일을 경멸하면서 그림의 구상과 실행면에서 한 치도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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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크의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 사람 또한 뛰어난 삽화작품을 세상에 남겼다. 팰펌에서 쓴 편지에서 블레이크는 플랙스먼을 “친애하는 영원의 조각가”라고 불렀다. 물론 우리는 먼저 저 위대한 작가들―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단테―의 작품들을 손상하지 않는 ‘삽화’가 존재할 수 있는지부터 공정하게 질문해야 할 것이다. 현란한 솜씨를 자랑하던 귀스타브 도레와 길버츠는 ‘존재할 수 있다’는 답을 증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가끔씩, 위대한 작가를 그림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작가를 정말로 숭배하거나 혹은 그에 진정으로 공감하는 예술가가 나타난다. 작가의 의도를 그보다 더 가깝게 전달해주는 것이 없으므로, 우리는 그 예술가의 작품을 당장 손에 넣을 수 있는 최상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호메로스와 아이스킬로스에 대한 플랙스먼의 해석은 바로 이런 경지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