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본인이 그런 짓을 하지 않을지라도, 수집가는 헛장과 여백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이들은 여백에 낙서를 갈겨쓰는가 하면 헛장을 찢어 파이프에 불을 붙인다. 이런 사람들이 한번 손대고 난 다음 남아 있는 책의 잔해를 본 사람이라면 날카로운 그리스식 과장법의 진가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책장을 넘긴다”고 말하지 않고 책 위를 “거닐면서 짓밟는다πατεȋν”고 말했다. 이런 사람들한테는 책을 더럽히고 기름투성이로 만들거나, 언커트본의 책장을 손가락으로 자르거나, 책을 불 근처에 두어 표지가 쩍쩍 갈라지게 만드는 일쯤은 별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