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냥꾼은 두 가지 질문을 떠올리며 깊은 생각에 빠진다.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 애서가는 형이상학자들이 자신의 영혼에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자신의 책에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 답에 따라 책의 가치는 크게 좌우된다. 책에 문장紋章이 찍혀 있다면 기가르의 『애서가의 문장Armorial du Bibliophile』을 참고해 그 책의 본래 소유주를 추적해볼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스무 개의 문장 중 무엇이라도 가죽 표지에 찍혀 있다면, 그 문장 하나만으로도 가죽 표지가 감싸고 있는 책의 백배가 넘는 가치를 지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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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어디로 가는가?”라는 또 다른 의문은 한층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의 보물은 어디로 흩어질 것인가? 이 책들은 친절한 주인을 만날 것인가? 혹여 책이 맞이할 수 있는 가장 가혹한 운명, 즉 현실주의자의 손에 떨어져 결국 트렁크 제조업자에게 팔려가게 되는 건 아닐까? 책장이 낱낱이 뜯겨 상자의 안감을 대거나 아가씨의 머리카락을 곱슬곱슬하게 만드는 데 사용되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