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적 최소 집단화가 우리/그들 가르기를 끌어낸다는 사실에서 떠오르는 것은 10장에서 이야기했던 ‘초록 수염 효과’다. 이 효과는 친족선택으로 인한 친사회성과 상호 이타주의로 인한 친사회성의 중간쯤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 효과가 나타나려면 임의적이고, 눈에 띄고, 유전자에 기반한 특징(초록 수염)이 있어야 하고, 그 특징이 있는 사람이 다른 초록 수염 소유자들에게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성향이 있어야 한다. 이 조건이 만족되면, 초록 수염 소유자들이 번성할 수 있다. 최소의 공통 특징에 기반한 우리/그들 가르기는 유전적 차원이 아닌 심리적 차원의 초록 수염 효과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특징이라도 나와 그 특징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느낌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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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비슷하게, 우리의 핵심 가치를 뜻하는 임의의 상징은 차츰 독자적인 생명력과 힘을 확보하여 그 자체가 기표가 아닌 기의가 된다. 그리하여 천 쪼가리에 특정 색깔과 무늬가 그려진 국기라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목숨을 걸고 사람을 죽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