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 탐사를 해본 적 없는 국가의 행성과학자로서 갖고 있던 그 자격지심과 부채감을 어느 날 입 밖으로 내보이고 말았다. 한국계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유독 내게 다정히 대해주고 지지해주는 미국 학자에게였다. 내 얘기에 그는 조금 놀라는 듯했다. 한번도 그런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에게 한 번 더 물었다. 그와 나의 공동연구자 중에는 옛 소련에서부터 활동해왔던, 지금은 우크라이나인이 된 원로 과학자가 있다. 우주경쟁시대 초반에는 소련이 늘 미국보다 한발 앞서나갔는데 아폴로 우주인의 달 착륙으로인해 상황이 역전되었을 때, 그때도 달 과학자였던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그 얘기라면 이미 나눠본 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사람을 달에 보내서 기뻤다고 했단다. '우리'는 미국인도, 미항공우주국 관계자도 아닌, 인류 전체였다. 이번엔 내가 조금 놀랐다. 과연 못난 자격지심이었구나.
과학 논문에서는 항상 저자를 '우리we'라고 칭한다. 물론 과학 논문 대부분 여러 공동연구자가 함께 내용을 채워 넣기 때문에, 우리라고 쓰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학과논문이다.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논문의 저자는 당사자 한명인데, 그래도 논문을 쓰는 저자를 칭할 때 '우리'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학위논문을 쓸 무렵에는 교수님들도 그렇게 하라고 하시고 선배들도 그렇게 했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따라 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학위를 받고도 한참이 지난 후였다. 연구는 내가 인류의 대리자로서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논문 속의 '우리'는 논문의 공저자들이 아니라 인류다. 달에 사람을 보낸 것도 미항공우주국의 연구원이나 미국의 납세자가 아니라, '우리' 인류인 것이다. 그토록 공들여 얻은 우주 탐사 자료를 전 인류와 나누는 아름다운 전통은 그래서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