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교실의 온도가 바뀌었다. 굳이 고개를 돌려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고요다. 고요가 온 것이다.
고요는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들어와 가방을 툭 내려놓았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와 약간 느슨하게 맨 넥타이, 그리고 왼쪽 손목에 찬 빨간 가죽 시계. 어쩌면 평범할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이 은고요를 만나면 한없이 특별해졌다.
아무도 고요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지만, 모두가 고요를 의식하고 있다. 고요는 고고한 초승달 같은 존재였고 우리는 그런 고요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