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색창연하고 을씨년스러운 동물원을 좋아한다. 동물원은 쓸쓸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인류원'에 들어가 있다면 그럴 것처럼. 커트 보니것의 <<제5 도살장>>에 그런 사람이 나온다. 주인공 빌리는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트랄파마도어 행성의 동물원에 갇힌다. 지구으 인간 서식처를 그대로 재현했지만 화장실만은 완전히 노출된 공간에서 알몸으로 전시된 채로 먹고, 싸고, 씻는다. 수천의 트랄파마도어 관람객은 그의 몸을 관찰하고 그의 행동마다에 환호한다. 그들은 남성인 빌리와 합사시킬 여성 지구인을 하나 더 납치해온다. 빌리는 인공 서식처에서 '짝짓기'에 성공하고, 동물원 안에서 아이가 나고 자란다. 동물원에 '전시된' 동물을 한껏 가련하게 여기면서도 자꾸만 찾아가서 기꺼이 관람객이 되는 나는 트랄파마도어에서 온 이기적이고 비겁한 사랑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