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늙은 앵무새 한 마리가
그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갖다주자
해는 그의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버렸네
-자크 프레베르, 「새의 선물」 전문 -
이 글의 화자인 진희는 12살 이후 성장을 멈춘 소녀이다.
물론 그것은 그녀의 정신적인 성장을 말한다.
그녀는 6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외할머니와 이모, 삼촌과 함께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눈치가 굉장히 빠르며 모든 것에 대한 통찰력이 어마어마하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에서 이선균이 연기한 박동훈은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주잖아.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그게 보여, 그래서 불쌍해.'라고 아이유가 연기한 이지안이라는 인물에 대해 평한 적이 있다.
나는 이 '새의 선물'을 읽으며 계속 그 대사가 생각이 났다.
진희는 자기 자신을 12살에 이미 다 성장해버려서 더 이상 성장을 할 필요가 없어서 멈췄다고 하지만, 그저 너무 힘들어서 나름의 영악함을 갖추려고 발버둥 친 결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희가 20살이 훌쩍 넘은 이모를 철부지처럼 묘사하는 것을 듣고 있자면 어느새 진희가 12살짜리 아이라는 것을 잊게 된다.
어른들이 철부지 아이를 보고 하는 생각을 듣고 있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진희는 외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살고는 있지만, 결국 선택의 순간이 오면 외할머니가 선택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미운 정'이 든 이모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상황을 외면하려 하기보다는 인정하고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이 진희의 성숙함인데,나는 그 점이 굉장히 마음 아팠다.
마흔이 훨씬 넘은 나로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아이라니.
진희는 사실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마음이 굳어버린 것일까.
그런 진희가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외할머니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진희에게만은 경계를 풀고 자신들의 모습을 내보이는 사람들 덕에 이야기는 생동감이 넘친다.
어찌 됐든 진희는 아이이기 때문인데, 진희가 얼마나 냉철한 판단력을 가졌는지를 알았다면 아마 그러지는 못했을거다.
어리석거나 나쁜 길을 가는 사람들 사이에 진희만이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진희에게서는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진희가 성인이 된 후의 이야기에서마저도 그것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진희는 그렇게 굳어버린 것이다.
진희는 후에 찾아온 친아버지와 살게 되었지만 자신의 마음의 경직을 회복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진희의 어린 시절은 결국 그녀에겐 감옥이었던 걸까.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가장 궁금한 것은 사실 진희가 아니다.
철딱서니가 없어서 평소에도 마음대로 하고 살다가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더욱 사랑과 위로를 받는다고 진희가 평했던 진희의 이모, 그 이모의 이후 이야기가 궁금하다.
이모는 그 후, 순정이 있다는 홍기웅과 뭔가 진전이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결국 진희의 생각이 맞았다.
나도 처음엔 너무나도 철딱서니 없이 행동하는 이모가 얄미웠지만, 결국 그녀를 걱정하고 있으니까.
부디 그녀가 행복해졌기를.
그리고 진희도 이제는 경직된 마음을 좀 풀고 진심으로 감정들에 몰입할 수 있게 되기를.
그리하여 이제는 '보여지는 나'와 '보는 나'가 합쳐져 삶을 조금은 호의적이라고 느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