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성격으로 살아왔지만 사실 나는 다혈질인지도 모른다. 집착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사실은 집착으로써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 걸음 비껴서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받지 않으려고 주변적인 고통을 견뎌왔으며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정열을 다
바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 나는 무궁화호를 보고 있다.
90년대가 되었어도 세상은 내가 열두 살이었던 60년
대와 똑같이 흘러간다.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