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법학자들은 어떤 사태나 사실을 한마디로 정의하며 일침을 놓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추후 생활 의 필요에 의해 응용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는 단선적인 정 의를 피하고자 하였습니다. 로마법 학자들이 정의를 내릴 줄 몰라서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법학자 야볼레누스는 "시민법 에 있어서 모든 정의는 위험하다. 그 이유는 대개 뒤집어엎을 수 없기 때문이다omnis definitio in iure civili periculosa est, parum est enim ut non subverti possit; 옴니스 데피니티오 인 유레 치빌리 페리쿨 로사 에스트, 파룸 에스트 에님 우트 논숩베르티 포씨트"라고 말했습니 다(『학설휘찬』, 50, 17, 202). 이처럼 로마법 학자들이 정의 내 리는 일을 극히 조심스러워했던 것은 정의하는 순간 정의 안에 포함되지 않을 것들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정의 한다는 것은 말의 울타리를 둘러 경계 짓는다는 것이고, 경 계 밖의 것들은 배제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사 안에도 예외와 변수는 발생합니다. 무리 짓고 경계 지을 때 는 이 예외와 변수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내가 울타리와 경계를 칠 때 그 경계 안으로 들어오지 못 하고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나의 울타리 와 경계가 단단하고 드높을수록 고민해봐야 할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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