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스포가 일부 포함되어 있음.
나는 추리물을 그리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 스케일이 크거나 살인 사건, 밀실 등 복잡한 것보다는 소소한 내용의, 일상 추리물을 좋아한다. 그래서 좋아하는 작가로 요네자와 호노부를 들 수 있다. 작년에 그의 <흑뢰성>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는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실존인물이었던 아라키 무라시게를 주인공으로 한 추리물이었다. 이 작품은 역사를 알고 인물들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일본 역사이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실까지 이해하며 보기는 어려웠지만 추리물로서의 재미를 느낄 수는 있었다.
정세랑 작가의 신작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는 여러모로 그 작품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통일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했고, 설자은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해서 여러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하지만 이 작품을 좀 더 즐기기 위해선 당시의 시대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이 나오기 전, 솔직히 통일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한 추리물이라는 얘기를 듣고 의아하면서도 불안했다. 과연 그 시대의 분위기를 잘 살려서 제대로 된 추리물을 쓸 수 있을까?
때는 신문왕 시대. 문무왕 때 삼국통일을 완성하고 당나라를 몰아냈지만 아직 정치적으로는 불안정했고 구려와 백제 유민들도 아직 신라에 통합되지 못한 터였다. 그러한 시기에 강한 왕권을 확립하고 통일신라의 전성기를 향해 나아갔던 왕이 신문왕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대규모 숙청도 있었고, 반대세력을 처단했다. 왕은 그러한 역할을 할 인물이 필요했고 그 인물이 설자은이 된 것은 책의 말미에 나온다. 정세랑 작가도 그러한 역사적 사실에 기인해서 신문왕 시기를 작품의 배경으로 한 것 같다.
작가가 밝혔듯이 이 책은 설자은 시리즈의 1권격이다. 이후 작품도 집필 중이라고 하지만 얼만큼 계속 낼 것인지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책이 잘 팔리면 계속 나올 수 있겠지만 일단 세 권 이상은 나오지 않을까?
시리즈의 시작이어서 그런지 설자은의 인물 배경, 가족, 사이드킥인 목인곤과 만나게 된 계기, 그리고 왕의 지령을 받아 활약하게 될 것이라는 암시를 그렸다. 이 또한 역사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또한 금성(경주)의 지리를 상상하며 보면 더 재밌을 것 같다. 마침 얼마전에 경주로 여행을 다녀왔던 터라 월지, 임해전 등은 반갑게 여겨지기도 했다.
이 책에는 네 가지의 사건이 들어 있는데 솔직히 추리물로서는 조금 약한 것 같다는 느낌은 들었다. 정세랑 작가의 필력은 인정하지만 추리물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가 아니기에 그런 점에서는 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와 추리물의 결합, 그것도 조금은 생고하게 여겨지는 통일신라 초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호기심을 자아내면서도 그 자체가 신비롭게 여겨지기도 한다. 아무래도 당시의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인 것 같지만 그래도 작가가 당시의 자료를 많이 수집하고 고증을 하려고 노력한 것은 느껴진다.
그리고 약 1400여년 전의 일들이지만 인물들의 말과 행동, 사건 해결 방식 등은 조선 이후 혹은 현대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설자은이 죽은 오빠를 대신하는 여동생이라는 설정도 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도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이 시리즈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를 것이다. 이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어떠한 사건들이 전개될 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기대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식상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너무 과욕을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