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작을 하다가 중단하고는 목공 작업 중 손가락이 잘려 수술한 인선과 더운 여름 유서를 썼다 찢었다 반복하는 화자 경하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한다. 인선은 병원에 입원 중이라 제주 집에 있는 새를 돌봐달라며 경하에게 부탁한다. 눈보라를 보며 인선은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엄마 정심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인선이 아마 새에게 먹이를 주러 가는 길은 눈보라로 앞이 보이지 않아 건천에 빠졌지만 자신은 이미 눈으로 추워 감각이 없는데도 새를 떠올리며 밥을 주기 위해 한줄기 빛을 찾아 인선의 집으로 가기위해 힘을 낸다. 가는 길의 눈보라, 혹독한 추위 표현이 어찌나 생생한지 한편의 시처럼 느껴졌다.
인선의 입에서 듣는 엄마이야기는 끔찍했다.
슬픈 내용은 많았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대목은 죽은 시체 위로 떨어지는 눈을 몇 살 더 먹었다고 사촌언니가 손수건으로 치우면 동생은 얼굴을 확인하는 장면이었다. 추운 겨울임에도 소녀 둘이 손을 꼭 붙잡고 발발 떨며 다니는 게 생생해서 너무 슬펐다.
지나간 자리는 모두 덮어버리는 눈처럼 제주의 기억들도 눈처럼 덮여버렸지만 죽음은 검게 나무로, 돌로, 새로 남아 그 자리에 맴도는 듯하다.
어린 여자 아이도 피해가지 못한 총알은 동생에게 꽂혀 언니들이 제 옷을 벗어 지혈하고 엄마가 손을 깨물어 피를 주는 모습은 동생이 살기만을 얼마나 바라고 다급한 상황에서도 생명이 붙어있는 상황에 가족들은 감사하고 행복해 해야 한다는 것을, 살아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꼈다.
꿈인 듯 현실인 듯 죽고 전쟁 같았던 그 자리에서 시간만 다를 뿐.
제주에서 경산. 그들이 죽이고 육신마저 없애버렸지만 남은 이들은 그 기억을 흔적을 찾기 위해 처절했다. 기억은 영원하다.
눈 내리는 겨울, 육신을 찾을 수도 없게 썰물 때 해변에서 총살했다는 이야기. 차가운 바다 속에 뜯겨져간 육신 때문에 엄마는 바닷고기를 안 먹는다고.
경하는 추위 속에 포기하지 않고 고통 속에 있으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꿈을 꾸듯 떠올린다. 인선이 만들고 찾고자하는 것은 이미 죽고 없는 그들이 놓아주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죄 없이 죽은 그 자리에서 발 묶인 자들에게 새장 속 갇힌 아미 새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듯 자유를 주고 세상에 나오게 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나도 경하처럼 꿈속에서 이야기를 듣고 나온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