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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정은과 현수는 내가 언젠가 막연히 에게도 도래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삶, 진짜 어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무엇보다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에서 그랬다. 그들은 서로를 완전한 독립체로 대하면서도 끊을 수 없는 강한 유대를 맺고 있었고 그것은 사랑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아주 단단하고 영속적인 결합으로 보였다. 그건 내가 구체적으로 그려보지는 못했지만 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렇게 되기를 바라 마지않았을 완벽한 형태의 관계 같았다."
이 부분에 가장 처음 밑줄을 그었어요. 전쟁 같은(말이 전쟁이지, 오합지졸 개싸움 같던) 연애를 하던 20대 초반에, 어떤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아주 완벽하고도 어른 같은 사랑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 이와 같은 생각을 자주 했거든요. 어쩜 저렇게 단단해보이지, 하는 생각이요.
주인공이 정은현수 커플에게 느꼈던 것과 같은 감정은 느껴본 적이 있으나, 역시나 주인공의 경우처럼 오래가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 커플이 금방 깨지든, 아니면 제가 멀리 떠나오든 말이에요. 내가 주체가 되는 게 아니라 종속이 되는 감정의 연속에는 오래 빠져들어 있을 수 없더라고요. 그런데도 그 강렬한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알기 때문에, <우리들>의 처음부터 끝까지 정은현수, 그리고 주인공이 느꼈을 감정들과 이야기의 진행에 푹 빠질 수 있었어요. 비전형적인 관계가 주는 기이한 완벽함과 그 주변인이 느끼는 고양된 감정을 이 소설의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오롯하게 느낄 수 있어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