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진영 작가의 신작 단편집을 읽었다. 그의 작품은 처음 읽은 것이었다. 사실 김승옥문학생 대상을 수상한 적도 있어 이미 실력이 검증된 작가였지만 그동안은 그의 작품을 읽어볼 계기가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새로운 작가를 한 명씩 알게 될 때마다 기쁘다.
이 작품집에는 표제작이 없다. 이 말은 <내 할머니의 모든 것>이라는 단편에 나오는 말이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제목이 맘에 들어서 이달책으로 구입하게 됐다. (친필사인은 덤이다)
제목이 '최소한의 최선'이 의미하는 것처럼, 이 작품집의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당한 만큼의 최선을 하며 살아간다. 천성이 그래서이기도 하고, 자라면서 그렇게 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스스로를 고갈시키지 않으면서도 삶을 잘 살아가는 방법. 우리의 삶은 늘 힘겹고 어렵지만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이 있다. 점점이 박혀 있는 그것들을 이어가며, 그것들을 이어가는 최소한의 노력을 하며 우리는 살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고 또 나 자신도 그러한 쪽에 가깝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에게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동정도 느껴지도 공감이 되기도 했다.
뒤에 나오는 해설에서는 그들을 빛과 어둠 쪽에서 어둠쪽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들에게 대응하여 빛의 역할을 하는 인물들도 등장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빛과 어둠의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적당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굳이 말하자면 온도의 차이랄까?
그 주인공들은 좀 더 낮은 온도에 있는 것이고 그래서 활발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멈춰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다른 사람에게는 느리게 느껴질 따름이다.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고 (설사 공존한다고 해도 경계선이 명확하다) 빛에 의해 어둠이 생기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빛을 강조할 수도 없고, 어둠을 그런 피동의 존재로 만들 수도 없다.
어쨌거나 이 작품집의 인물들은 완전하지도 못하고 어딘가 어설픈, 그러나 좀 더 따뜻한 쪽으로 이동해가는 이야기다. 그것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사회가 될 수 있고.
문진영 작가는 그러한 인물들의 내면을 잘 포착하여 섬세하게 그려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이지만 어쩐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그러한 심리묘사와 인물들간의 갈등, 그리고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역시 그러한 면에서 탁월함이 돋보인다. 과하지도, 억지스럽지도 않다. 독자에게 이해를 강요하지 않고 설득력있게 이야기한다. 특히 그의 섬세하고 담담한 문체가 그러한 것을 더 도드라지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작품집은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준다. 인생의 낙관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우리를 위로하며 우리가 살면서 겪는 것들에 대해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 작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감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