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살아야 하는 꿈이 있다면, 나는 그곳에서의 열흘을 계속해서 살겠다. 열흘을 전부 다 살고, 꿈에서 깨어나면 다시 그 낡은 침대에 누워 있고, 다시 열흘을 살고, 깨어나면 다시 그 침대. 그 방. p.121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한 가이드북은 두께가 오 센티쯤 되었 는데, 출발하는 날까지도 펴보지 않았다. 여정중에 띄엄띄엄 읽으면서 맘에 드는 곳이 생기면 그곳으로 향하고, 떠날 때면 해당하는 페이지들을 뜯어서 버릴 생각이었다. 배낭은 점점 더 가벼워질 테고, 그렇게 마지막 한 장까지 버리고 나서 가뿐 하게 돌아와야지, 그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이었다. 전부 다 버 리고 난 뒤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과 그러기에는 너무 늦 었다는 생각이 혼란스럽게 교차하던 나의 스물아홉 살. p.124
컴퓨터 혹은 카메라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 사이 어느새 육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고, 나는 더는 삶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지도 않았다.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듯 나는 그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잘라내거나 붙여넣을 수 있는 건 내 것이 아 닌 다른 시간들뿐이었다. p.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