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고, 그 어떤 것도 삶 쪽으로 혹은 죽음 쪽으로 기울어져 있지 않았다. 할머니는 자신의 거취에 대해 어떤 단서도 남겨놓지 않았다. 그녀가 어딘가로 영영 떠 나 돌아오지 않을 셈인지, 잠시 여행을 떠났는지, 아니면 당장 오늘 저녁에 돌아올 것인지 우리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엄 마와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그곳을 떠났다. p.114
엄마는 그후로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그날만큼의 확신을 가 져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엄마의 모든 믿음을 앗아 갔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에게 누군가를 완전히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사람이기도 했던 것이다. p.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