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잔을 내밀며 말했다.
잊어버리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기억하자.
그 말은 동시에 내게 이렇게 들렸다.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사랑하자. 나는 대답 대신 잔을 맞부딪쳤다. 우리 는 마루에 걸터앉아, 형제 하나가 사라졌다는 사실 따위는 알 지 못한 채, 아니, 이미 세상을 떠난 것들과는 완전히 무관하 다는 듯이 뛰노는 도레-파솔라시도를 바라보며 상그리아를 홀짝였다. p.88
근데 너, 상그리아가 무슨 뜻인지 알아?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그리아의 어원은 '피'라는 뜻의 '상그레(sangre)'. 그날 그 사람이 알려준 거야, 하고 엄마가 말했다. 상그리아. 뜻에 비하면 퍽 상큼한 발음이었다. p.89
내가 삼대째 물려받은 것은 알코올에 대한 내성, 돌아온다는 약속, 어쩌면 사랑. 우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랫말에 오 랫동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pp.8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