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엄마가 다시 떠날 때면 진심으로 아쉽 기는 했어도 말리지는 않았다. 손가락 걸고 약속했으니까. 홀 로 남겨진 시간 또한 엄마가 돌아온다는 기대감으로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갓난아이를 하나 데리고 와 서는 할머니에게 덥석 안겼고, 그게 나였다. 지독한 숙취 같은 계보. 할머니는 각종 알코올의 최대 희생자라고 할 수 있었다. p.74
취한 것처럼 살라며 아무것도 겁내지 말라며.
내가 대꾸하자 엄마는 내 두 손을 꼭 붙잡더니 말했다.
그래, 하지만 아깝지 않니? 그런 데 쓰기에는 시간도, 에너지도.
생각해보니 그랬다. 어차피 그들과 나는 남남이나 다름없었 다. p.79
사랑. 언제나 주제는 사랑이었다. 엄마는 자신이 그렇게 죽 어라 떠나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사랑이 너무 많아서라고 했 다. 굳이 돌아오는 이유 역시 사랑이 너무 많아서, 다 둘 데가 없어서라고. 엄마는 늘 자신이 8개 국어를 할 수 있다면서 허 풍을 떨곤 했는데, 내가 도저히 못 믿겠다고 할 때마다 언제나 '사랑해'를 여덟 가지로 줄줄 읊었다. p.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