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p
아름다운 것을 너무 많이 본 자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 내게 느낄 수 있는 영혼이 남아 있다는 것이 나를 기쁘고도 두렵게 했다. 그 마음에 대한 보답이라는 듯 저 멀리 사슴 한 마리가 보였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가는 다리로 성큼성큼 밭을 가로질러 숲으로 뛰어가는 사슴을 보면서, 작은 것에도 쉽게 옹졸해지고 미움으로 출렁이던 나 자신을 멀리멀리 떠나보낼 수 있었다. 인간의 의지로 이룰 수 없는 몫이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