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좋아지지 않는 하루키. 내가 뭐라고 좋아하든 말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말이다. 일단 제목부터. 각각의 사람들은 누구라도 예외없이 일인칭단수로 바라보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타자에 대한 생각은 착각이거나 아름다움 오해 내가 이해하기 좋은 해석일 수 밖에 없다. 공감이라는 것도 결국 뇌내 작용일 뿐. 그럼에도 타자로 무던히도 여행을 떠나는 것은 무모하지만 아름답다. 표제작인 <일인칭단수>를 먼저 보았다. 읽으면서 남은 생각은 "니가 뭘 알아?"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 아무도 모르지. 나의 사정이나, 감정이나 생각같은 것은. 그러니까 억측하고 오해하고 갈등에 빠지기도 하지 않는가? 하루키의 작품이 100여편이 넘는다고 하는데, 이 단편선의 위치를 잘 모르겠으나 초기작품인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했다. 하루키 전문가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이야기지만. 레이먼드 카버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별로 비슷하지 않은 것도 같다. 도서관에서 그의 정편을 찾아봤는데, 방대한 분량에 놀랐다. 그런 작품이 20편 정도 된다고 하니 생산력 하나는 끝내주는 것 같다 작품을 읽는 것인지, 하루키를 탐구하는 것인지 모르게 읽었던 것 같다. 계속 알아가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