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페이지에 달하는 총 3권의 장편소설을 읽어내는 데에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이기에 믿고 시작할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상징들과 암시들, 내 짧은 상상력으로는 따라가기 쉽지 않았는데, 아오마메와 덴고의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마치 아우토반을 달리듯 거침없이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실타래가 조지 오웰의 「1984」,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영화 매트릭스 등을 연상하게 만들며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가 박탈된 전체주의, 현실 세계와 또 다른 기묘한 세상의 존재, 자신이 있는 세계의 실체를 자각하게 되면서 그 실체를 추적하는 모습이 각 등장인물들의 시점으로 전개되면서 더욱 흥미로웠다.
「1Q84」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전작 「언더그라운드」를 배경으로 탄생한 작품으로 사린가스를 살포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옴진리교의 피해자와 신도들을 인터뷰한 기록을 바탕으로 소설로 재탄생했다. 특히 언더그라운드의 2권 「약속된 장소에서」는 독자들도 읽기 힘들 정도로 분노를 자아냈다는데, 무척 궁금하기도 하고 이 책과 연계해서 읽으며 더욱 깊이 있는 독서가 될 거 같다.
처음에 「1Q84」를 IQ84로 봤던 나는 아이큐는 떨어지지만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인가 생각했다가 1Q84라는 걸 알고 어찌나 창피하던지, 실제로 몇몇 언론사에서 IQ84로 기재하면서 망신을 당했다고 하니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Q는 숫자 9의 일본어 발음과 같아 제목을 1Q84로 했을 것도 같은데, 다시 봐도 제목을 정말 잘 선정한 것 같다.
「1Q84」를 읽으며 가장 마음 아팠던 건 단지, 그런 부모를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어릴 때부터 강요받아야 했던 믿음과 삶, 그것이 잘못된 건지도 모르고 내가 있는 그 세상이 전부라 믿고 교리대로 따라야 했던 어린 소녀와 소년들의 모습이었다. 조금씩 그것을 의심하고 그 실체에 접근하며 자각했을 때 그들에게 감시당하고 제거될 수밖에 없는 위험 대상이 되어야 했던 사람들.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규칙에서 벗어나려 하는 자가 있다며 저세상으로 넘어가기 전에 가차 없이 없애버리려는 모습이 단순히 사이비 종교에만 국한되는 것일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도 계속 곱씹어 볼 거 같다.
"이 세계의 시스템이 어딘가에서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내 의지에 따라 이곳에서 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