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편의 단편들이 실려있는 책, '내일의 연인들'.
정영수라는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다.
표지 이미지에서부터 조금은 예감했다.
이 책에서 다뤄지는 인물들은 다 쓸쓸한 구석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연인이 서로를 껴안고 있는데도 느껴지는 황량함과 쓸쓸함, 그리고 슬픔 때문에.
이야기들은 대체로 담담하게 진행된다.
소설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건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수월했다는 의미이다.
그 감정들에 공감이 되던 되지 않던, 그들의 감정과 생각이 글을 통해 생생하게 읽혔다.
책을 담담히 읽어가다 어느 순간 과속방지턱에 턱하고 걸린 듯 초조해졌다.
'더 인간적인 말'의 이모 때문이었는데, 나는 그녀의 죽음을 말리고 싶었다.
도무지 그녀가 왜 죽으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여기저기 아프면서도, 아니 아프기 때문에 더욱 살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데, 아픈 곳도 없고 먹고사는 것이 힘들지도 않으면서 자발적으로 죽겠다니.
머리로도 심정적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다가 죽음이 결정 나 버리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 글의 화자도 나도 쫓기는 느낌이었다.
죽음이라는 것은 한 번 결정되어 버리면 뒤늦게 후회한다고 해도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이모는 나에게, 그리고 이 소설의 인물들에게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만 같다.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이끌어내는 여러 가지 방식에 대해서.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의 인물들은 그런 철학적인 질문에 이르러서야 '관념적인 대화를 줄이고 구체적인 대화를,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논리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책의 제목이자 수록된 단편의 제목이기도 한 '내일의 연인들'의 의미와는 달리
이 책의 연인들의 미래는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자신에게 긴 시간을 동안 헌신했지만 자신이 사랑하게 된 새로운 사람과 결혼해버린 선애 누나.
돈 많은 사람을 위해 자신을 그다지도 아껴주던 사람을 차버리고 결혼한다는 비난을 감수하고 한 결혼이었건만 그녀는 그렇게 만난 남편과도 이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이혼한 부부가 떠난 집에 새로운 연인이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어느 날 그들은 깨닫는다.
자신들이 그 이혼한 부부의 유령일 수도 있겠다는.
'우리들'의 연인들도 화자도 마찬가지다.
너무나도 완벽하게 보였지만 사실은 불륜이었던 남녀.
그들은 결국 그들의 완벽한 행복이 확실하게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허해져 버린다.
그리고는 그 모든 것을 확실히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자신에게 올 것이 확실한 모든 손해를 감수하고.
왜 이 책 속 사람들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더 편안하고 덤덤하게 살아갈 수 있음에도 굳이 더 힘든 길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그냥저냥 살아나갈 수 있는데도, 자기 파멸적인 선택을 하고 힘들어진다.
하지만 그들은 그 선택으로 인해 힘들어졌을지언정 자신의 마음에는 조금 더 떳떳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남편에게 불륜을 고백했을 것이고, 욕을 먹으면서까지 자신이 사랑한 사람과 결혼했을 것이다.
물론 자신이 지금 그러고 싶기 때문에 죽기까지 한다.
삶이 논리와 이치에만 맞게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힘들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마음이 시키는 힘든 길로 가는 것도 삶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비극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밝고 긍정적이라고 만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뭔가를 남기는 느낌의 소설들이었다.
문장은 담담했지만 그 문장 아래에서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것이 느껴져서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