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이 '진실은 복수형일 수 있다'고 말했다면, <트러스트>는 미국의 금융가 부부를 둘러싼 소설과 남편의 미완성 자서전, 회고록 작가의 기록, 아내의 일기를 통해 어떤 진실도 불완전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미국의 금융가 부부 이야기를 통해 미국의 역사를 서술하는 구성도 재미있었지만 돈의 힘이 미치는 범위를 글쓰기까지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고, (고대에는 분서갱유를 저지를 수 있는 게 정치권력이었다면 현대사회에서는 금융자본가도 가능..)밀드레드의 진실을 알았을 때 앤드루가 왜 그리 자서전과 회고록에 집착했는지, 배너의 소설을 세상에서 없애려고 영향력을 발휘했는지 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신탁 (재산)" "신뢰" 등을 뜻하는 "트러스트"라는 제목 아래 놓은 네 개의 텍스트는 승자의 기록에 균열을 내는 서로 다른 네 개의 기록이 "나를 믿어 달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나는 누구에게 가장 믿음이 가는지 가늠하며 읽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분량이 좀 많긴 하지만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읽어도 좋을 것 같은 책이다. 예전에 구입해서 절반 정도는 단숨에 읽었다가 뒷부분은 진도가 잘 안 갔었는데 독파챌린지 덕분에 완독해서 기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