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를 유학 보낸 혜경궁의 방법은 결과적으로 절반의 성공이었다. 영조 곁에 있었던 정조는 임금과의 거리를 좁히며 무사히 왕위에 올랐지만, 반대로 어머니와 거리가 멀어졌다. 사도세자가 부왕과 거리가 멀어져서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렀다면, 정조는 어머니와 거리가 멀어져 나중에 외가를 공격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정조가 즉위 후 외가를 친 것으로 볼 때 외가에 별로 깊은 정이 없음이 분명하다. 정조를 유학 보낸 혜경궁의 꾀는 정조를 위해서는 성공이었어도 자신을 위해서는 실패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