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후 집에 돌아왔을 때, 페덱스 배달원이 우리 집 초인 종을 눌러 교정 교열이 끝난 단행본 원고를 건넸다. 나는 여러 해동안 엄마가 한국에서 살아온 삶의 사회적 맥락을 형성했지 만 스스로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글을 써왔 다. 한국전쟁, 미국 군사주의와 한국 독재 정권하에서 평범한 사 람들의 삶, 성인 여성과 소녀들을 대상으로 자행된 노골적이거 나 모호한 형태의 조직적 폭력이 그것이다. 나는 순수한 지적 호 기심을 좋은 것이 아니라 엄마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아야 했 기에 이 작업에 착수했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엄마가 겪 었을지도 모를 일을 알아내기 위해서 무슨 일을 겪었기에 엄마 는 내가 열다섯 살 때부터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 걸까? 내가 스 물세 살일 땐 어쩌다 세상에 문을 닫아버린 상태가 되었을까? 어 쩌다 그렇게 남은 인생을 신선한 공기도 햇살도 사람들과의 만 남도 없이 보내게 되었을까? 어떻게 어린 시절의 그 활동적이고 활기찼던 모습이, 시간이 흘러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땐 정신적 고 통에 시달리며 은둔하는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일까? 어째서 우 리 가족 말고는 아무도 엄마를 신경 쓰지 않은 걸까? 나는 상상 속 온갖 시나리오 안에 엄마 모습을 그려보았고, 엄마를 경계 너 머로 밀어낸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p.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