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병명으로는 말라리아인 학질은 한기가 잘 드는 병이니, 여름이지만 겨울용 방한모자인 휘항을 써서 자신이 병중에 있음을 확실히 보이겠다는 것이다. 더욱이 자기 휘항이 아니라 아들 것을 씀으로써 정신이 온전치 않음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차차기 왕권 후보인 세손의 아버지임을 보여 동정을 얻고자 했다. 남편의 마지막 청을 들은 혜경궁은 세손 것은 작으니 당신 것을 쓰라고 답했다. 혜경궁은 세자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혜경궁의 반응에 세자는 "자네 아무래도 무섭고 흉한 사람일세"라고 했다. 사도세자는 혜경궁의 대답을 자신이 세손의 휘항을 쓰고 갔다가 정조에게까지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한 것으로 이해했다. 혜경궁은 남편에게서 뜻밖의 말을 듣고 놀라 얼른 정조의 휘항을 가져오게 했지만 세자는 그것을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