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장례 절차는 진행할 수 있게 되었지만, 신하들은 아내가 죽은 판에 사위가 죽었다고 그 집에 가겠다고 떼쓰는 임금을 말려야 했다. 임금의 아내는 여염집 부인이 아니다. 나라의 어머니다. 아무리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아도 임금이 국모의 죽음을 외면할 수는 없는 법이다. 영조의 행동은 누가 보아도과한 처사였다. [영조실록]에는 승지, 대사간 등이 말리자 영조가 그들을 해임했고, 밤에 화완옹주 집에 갔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돌아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성왕후는 죽어서도 남편의 사랑과 관심을 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