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에 하루키의 작품을 처음 접한 지 이제 거의 30년이 흘렀다. 처음으로 손에 취한 작품은 <노르웨이의 숲(당시 번역본 제목은 '상실의 시대')>이었고, 그 뒤를 이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당시 번역본 제목은 '일각수의 꿈')>를 읽었다. 두 작품은 내용과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만, 나의 하루키 작품 해석의 기초가 되었다. 그 시절부터 느꼈던 하루키의 고유한 요소들은 그의 후기 작품에서도 계속해서 발견되곤 했다.
그의 수많은 장편, 단편, 수필을 통해 그의 독특하고 성실한 글쓰기 스타일에 항상 감탄하며, 벌써 그가 74세에 접어들었다는 것에 놀랍기도 하다. 시간이 흘러 우리 모두가 나이를 먹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은 그가 1980년에 발표한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기반으로 재탄생한 작품이다. 하루키는 초기작에 대한 불만족 때문에 이를 책으로 내지 않았으며, 다시 써야겠다는 마음을 간직하며 40년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42년만에 이 작품을 재탄생시켰다.
하루키의 이름만으로도 화제가 되기에 이 작품 또한 일본 출간 직후부터 주목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여러 출판사들이 판권 경쟁을 벌였고, 결과적으로 문학동네에서 발매되었다.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해서가 아니라 그동안 문학동네에서 하루키측과 쌓은 신뢰 덕분인 듯 하다.
이달책으로 구매하자마자 이틀만에 다 읽었다. 하루키 특유의 몰입감 있는 문장들이 768페이지를 술술 읽게 만들었다. 다만, 작품의 결말은 조금 예상 밖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다운'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 독자는 '도시'와 '벽'이 어떤 의미를 지닌지 깨닫게 된다. 그 안의 도시와 벽은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또한 이 작품은 평온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주었다. 그렇게 읽던 중, 작품의 마지막에서 '안녕'이라는 말이 나올 때 (원문으로는 아마도 '사요나라'일 듯) 그 말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마치 하루키가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이제 끝이라는 것처럼.
그래도 나는 이 작품이 하루키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풍성한 상상력이 우리에게 더 많은 선물을 줄 것이라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