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해질녘 거리를 걸어갔다. 이윽고 시계탑 앞을 지났다. 지나면서 습관적으로 시계를 올 려다보았다. 시계에는 여느 때처럼 바늘이 없었다. 그건 시간 을 알려주기 위한 시계가 아니다. 시간에 의미가 없음을 알려 주기 위한 시계다. 시간은 멈춰 있진 않지만 의미를 상실했다. 이 도시에 그것 말고 다른 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침이 오면 해가 뜨고, 저녁이 되면 해가 진다. 그 이상으로 자잘하게 시간을 분할하는 걸 대체 누가 필요로 할까? 하루와 다음 하루 의 차이를 만약 차이라는 게 있다면 누가 알고 싶어할까? 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