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것에 익숙해"라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내뱉는 숨이 딱딱 한 물음표가 되어 허공에 하얗게 떠오른다.
나는 기다리는 것에 익숙한 게 아니라, 그저 기다리는 것 말 고는 아무런 선택지도 주어지지 않았던 게 아닐까?
게다가 애당초 나는 지금껏 대체 무엇을 기다려왔다는 건 가?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정확히 알고나 있었을까? 자신 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명확해지기를 그저 참을성 있게 기다렸 다. 그게 전부인 건 아닐까? 나무상자 하나에 들어간 더 작은 나무상자, 그 나무상자에 들어간 더 작은 상자. 끝없이 정묘하 게 이어지는 세공품. 상자는 점점 작아진다-그리고 또한 그 안에 담겨 있을 것도. 그것이야말로 내가 지금껏 사십몇 년을 살아온 인생의 실상이 아닐까? 대체 어디가 출발점이었는지, 그리고 도달점이라 할 만한 것이 어딘가에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생각하면 할수 록 판단하기 어려웠다. 아니, 어쩔 줄 몰랐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눈 녹은 물이 졸졸 흘러드는 수면을 쨍하니 맑 고 싸늘한 달빛이 비추었다. 세계에는 여러 종류의 물이 있다. 그것들은 모두 위에서 아래로 흘러간다. 자명하게, 아무런 망 설임 없이. 6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