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흡연가이면서도 이 책을 선택한 건 단순히 호기심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잔혹사'라는 표현이 내내 눈길을 잡아두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담배 피는 여자에 대한 인식은 어디쯤이었을까. 쪽진 머리의 할머니들이 담배를 문 모습에 지금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힙해보였지만 학창시절 내 또래나 여자들의 흡연을 목격하면 으레 시선이 주춤했다. 담배는 일진이나, 팔자 사나운 언니들이 피는 기호품으로 여기곤 했으니까. 대학이나 가서야 무리를 지은 친구들이, 그러니까 그동안 담배에 꽂혔던 이미지와는 멀었던 아이들이 연신 피워대는 모습을 보고 그제서야 일상적으로 편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내 선입견도 돌이켜보면 우습기 짝이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제대로 목격한 흡연 여성의 잔혹사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만큼이나 아득하면서도 현재에도 머문 이야기들이었다.
남성의 전유물이자 무용담으로도 통하던 담배는 어째서 여성에게 넘어오면 천박하고 괘씸한 짓이 되는 걸까. 남성과 여성의 흡연은 철저하게 관습과 통념이라는 투명한 벽으로 똘똘 뭉쳐 견고하게 세워진 듯했다. 여성들이 담배 한대를 피울라면 007 작전을 방불케 하거나 욕먹기나 폭력이 행사되기도 했으니까. 그뿐이랴, 딸의 흡연 사실을 안 부모님은 온갖 실망감과 절망감은 물론 연좌의 고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작가의 경험과 줄줄이 늘어놓는 잔혹사들은 이 기호품 하나로 그럴만한 일인가,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어처구니가 없다가도 결국엔 그럼에도 담배를 피는 여성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가닿게 한다.
"자기에 대한, 자기 선택에 대한 주저 없는 긍정"이자 "사회가 강요하는 어처구니없는 편견에 저항하고 그 너울을 걷어내려는 단호한 몸짓"이었고, "자기만의 호흡을 하기로 결정한 여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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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애연가들 사이에서도 꿋꿋하게(?) 비흡연가로 살아온 마당에 글자를 읽고 담배 생각이 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본문 그림을 그린 엄주 작가님의 삽화도 한 몫 거들었지만 새삼 허공에 내뿜는 담배 연기가 이토록 처연하고 애틋할 줄이야. 특히 표지 그림은 버킷 리스트에 넣을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