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영역만큼은 그나마 평등한 곳인 줄 알았던 순진한 시절도 있었다. 서서히 금이 가고 균열이 생긴 것은 얼마 안 된 일이지만서도 알수록 내가 학습된 시각과 정보를 가지고 편협한 세상에서 살았구나 싶었다. 일상적인 삶에 침투해 보편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구축하는 동안 눈치 채지 못한 것이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오랫동안 공고히 이뤄진 것이었고 나는 이제 막 자각한 셈이었으므로 더 넓고 깊게 파고 싶은 마음한 커졌다. 그중에서도 균열에 큰 한방을 던져준 고마운 이 책은 비너스/어머니/아가씨와 죽은 처녀/괴물 같은 여성으로 챕터가 나뉜다. 미술사에서 여성을, 특히 몸을 어떻게 성적 대상화하고 폭력을 정당화 했는지, 또 얼마나 쉽게 소비하고 있는 중인지 과거와 현재를 되짚는다. 여러 작품을 언급하기에 검색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미술을 감상하는 방식과 소비하는 관점에 변화를 일으킬 이런 수고로움은 고맙기까지 했다. 앞으로는 미술 감상이 마냥 경이롭거나 감탄스럽지 않을 것이다. 때론 불편하고 불만스럽기도 할 것이다. 나는 기꺼이 그쪽을 택하려고 한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알게 될 것이고 그럼으로써 균열이 완전히 깨졌을 때 내 앞에 드러난 세상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