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애매한 교집합을 이루는 희주 때문에 소설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희주가 하는 말은 나와 비슷했고, 또 달랐다.
"나는 '나에게'라고 말하지 않고 '누군가에게'라고 말하길 택했다. 그것은 내가 나의 삶을 견디기 어려울 때 택하는 방식들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나를 통과하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면서, 글을 썼다."(p.103)
숨기고자 했던 응축된 기록은 다시 보니 끈적하게 잘만 드러낸 글이었다. 순간의 생각을 풀어낸 밀도 낮은 글은 지금 보니 낯선 구석이 있다. 1차로 걸러지는 나의 부분은 원하지 않는 모습일까? 언젠가 내가 아닌 글을 쓰고자 할 때 -그것도 사실 나의 얘기겠지만- 희주처럼 나와 애매하게 닮은 인물을 선정할 수도 있겠다.
읽을 때도, 다 읽고난 후에도 재밌다는 감상이 남았던 작품.